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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묘한 진리의 숲 3 _ 교동도 소리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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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도를 담으며 

지난 여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의 학생들과 함께 마이크와 녹음기를 나눠들고 교동도의 소리풍경을 녹음하였다. 사전에 진행된 워크숍을 통해 학생들은 기초적인 이론적 배경과 녹음기술을 익히고 부족한 부분들은 녹음엔지니어를 겸하는 김근 채, 장준호작가가 메꿔주었다. 4 개의 조로 나뉘어 섬의 구석구석을 훑었고 정치, 사회, 역사, 지리, 환경, 문화적으로 모두 특별한 위치에 있는 이 섬이 가진 수많은 모습들을 소리와 함께 담기로 하였다. 나는 이들 4 개 조와는 별개로 360 도 입체음 장을 녹음할 수 있는 엠비소닉(Ambisonc) 녹음장비를 구비하고 지석리를 시작으로 섬의 주요 마을과 고적, 분단의 현실을 들려주는 아픈 기억의 사람과 장소들을 찾아 다니며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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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과 이주민들을 위한 여러가지 장치들을 고안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들려주었으며 올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회 고전을 가진 크지쉬토프 보데츠코는 나에게 이렇게 얘기하였다. 우리는 모두가 이방인이라고 (“ We are all strangers.”). 뉴욕 과고향인폴란드의바르샤바, 전시를 위해 여러도시를 유목민처럼오가는 그의 삶뿐만 아니라 현대사회를 사는 많은 이들은 고향이라는 곳으로부터 격리되고 분리되어 새로운 삶의 방식을 강요받으며 적응당하고 살아간다. 한국의 근대 도시사회에서 자신이 태어나 자란 집이 아직 보존되어 있는 이가 몇이나 될까? 그래서 이곳이 내가 태어난 곳이고 자라난 곳이자 마음의 고향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보존된 동네를 간직한 운좋은 이들이 얼마나 있는가 말이다. 우리 모두는 넓은 의미의 실향민이라고 되새기며 교동도의 주민들을 만나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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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룡시장 인근의 읍내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나이 지긋하신 실향민들은 타지에서 온 젊은이들을 반갑게 맞아주셨고 험한 세월 누구에게도 쉽지 않았을 질곡의 세월들을 들려주셨다. 시민운동가로 활동중이신 김영애선생님은 교동의 역사와 더불어 소리꾼이신 이창호 할아버지를 소개해 주셨고 이제 아흔을 넘기신 분의 구슬픈 노래가락, 이야기와 더불어 더 젊었던 시절의 카세트 녹음기록을 디지털로 복원해 담았다. 주말이면 관광객들로 북적대는 시장의 골목마다 단칸방 난민생활의 고단한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있고 그 단칸방 처마에 제비의 집들이 있었다. 철새이지만 귀소성이 강한 제비들은 매년 같은 지방으로 돌아오는 예가 많다 하는데 고향으로 돌아가길 원하는 이분들의 마음처럼 애잔한 제비들의 울음소리를 기록했고 시장의 음유시인같은 포크가수의 노래, 설탕과자를 꾀는 즐거운 만담을 녹음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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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읍내라고 하는 대룡시장 인근을 제외한 주변마을은 여느 농촌마을의 조용한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분단상황이라는 특수성에 섬이지만 어업보다는 농업에 특화된 생업환경이 조성되어 있었고 오랜 역사에 걸쳐 개간된 땅과 잘 조성 된 저수지는 당시의 심각한 가뭄에도 아랑곳 않고 좋은 작황을 보여주고 있었다. 오랜기간 제한된 개발과 농업위주의 생활방식은 그곳의 자연과 식생을 그대로 보존하게 하였고 이글거리는 6월의 생기를 담은 새들과 곤충, 높은 나무를 스치는 시원한 바닷바람을 담을 수 있었다. 제한된 조업으로 어촌 특유의 비릿한 활기는 없었지만 포구마다 갈매기들과 작은 파도소리를 놓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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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상황은 유령처럼 교동도의 어디에나 있다. 바로 대북, 대남 방송이다. 지석리의 초등학교에서도 남산포구에서도, 서한리, 망향대에서도 확성기를 통한 특유한 음색의 말소리와 노랫소리가 배경음처럼 깔려있다. 시골마을 넋나간 이의 혼잣말처럼 계속해서 들려오는 의미를 잃은 프로파간다는 아마도 얼마 남지 않은 분단의 소리유산일지도 모른다. 이것은 어떤 주민에게 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소음공해였고 어떤 이들은 이미 들리지 않는 배경음이 되어버렸다. 이는 분단과 대립이라는 정치적 상황을 끊임없이 주민들에게 각인시키는 지표적 소리(Soundmark)가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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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파공작부대였던 을지타이거여단의 충혼전적비를 찾았을 때 우연히 녹음하게 된 대북방송에 나온 노래 ‘고향의 봄’은 확성기를 통해 먼 곳에 닿으려 하지만 힘이 모자란 안타까운 실향민들의 마음같았다. 강건너 고향의 실루엣이 보이는 곳에 위치한 실향민들의 제단인 망향대에서 만난 할아버지들의 넋두리같은 대화 역시 알아들을 수 없는 대북방송의 울림과 섞여 그들이 처한 상황을 더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었고, 초등학생들의 즐거운 수업과 놀이의 시간에도 어김없이 대북대남방송은 그들의 주변을 유령처럼 맴돌고 있었다. 

이 소리들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학생들의 바지런한 정리작업을 거쳐 교동도의 소리를 환경과 문화인류학적 맥락에서 정리한 좋은 아카이브가 되었고 이 소리들을 엮어 7 채널의 입체음향 환경에서 들려주는 ‘교동도 소리풍경’이라는 전시 가 아트선재 한옥에서 진행중이다. 소리로 읽어내는 교동도는 ‘소리풍경’을 담는 전통적 현장녹음방식에서 출발하지만 현장성과 몰입감을 극대화하는 엠비소닉기술을 활용한 전시, 이후 구현해보려고 하는 위치인식 헤드폰을 사용한 들려주기 등 새로운 형식의 체험을 앞으로도 제안하려고 한다. 

눈을 감았을 때 비로소 인지하게 되는 수많은 존재와 세상의 가치를 교동도와의 만남을 통해 풀어내는 이번 프로젝트는 소리 라는 익숙하지만 새로운 영역의 환경을 받아들이려는 학생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가능하였고, 분단상황의 지역사회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과 더불어 분단뿐 아니라 학제간 경계를 넘고 넓히는 초석이 되기를 희망한다. 녹음에 참여하고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에게 다시 한번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이 글을 마친다. 


권병준

2017. 11.20